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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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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곰이 이사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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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담하우스 댓글 0건 조회 3,016회 작성일 2020-06-3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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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막내로 남아있던 아기 곰 가족이 이사 가는 날이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시설 입구에서 부르릉거릴 때, 모든 도담 직원들과 생활인 이모들이 아쉬움의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아기 곰은 이사 가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느 때처럼 호기심이 잔뜩 묻어난 얼굴로 잠시도 몸을 가만 두지 못하고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오뚜기 왕자님 모습을 보인다. 여전히 엄지손가락 하나는 입속에 넣은 채로 말이다.  

그간 우리 도담 집과 인연을 맺은 모든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던 세 아기 곰들이 하나 둘 둥지를 떠나갔다. 한 녀석은 원래의 가정으로, 또 한 녀석은 먼 남쪽지방으로, 이제 마지막 녀석은 모자원으로 이사를 간다. 우리 집에서 태어나 첫 돌맞이 무렵이 되었기에, 정이 많이 들어 눈에 밝힐 정도로 사랑스러운 녀석들이다. 시설 규정상 미혼 한 부모들이 아이를 낳고 양육을 선택하고 1년여를 거주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한다. 우리 시설은 위기 임신 미혼모들의 안전한 출산과 건강한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1차 기본생활시설이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낯선 곳에서 일상생활에 적응하려면 많이 힘들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숙식을 비롯한 여러 생활편의를 제공하니 맨 몸으로 들어 와 살아도 되지만, 이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냉정한 삶의 현장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다.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 한 부모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시설에서는 반찬이 맵네 짜네하며 밥투정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방이 춥네 덥네하며 짜증을 부려도 다 받아 줄 수 있는 여유로운 친정 같은 집이지만, 아마도 새로운 곳에서는 그런 투정이나 어리광부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밥도 스스로 지어 먹어야 하고, 아이도 스스로 돌보며 생활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 고민이 늘어 날 테고, 양육문제도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안온한 둥지 같은 편안함은 없을 터이다. 무조건 자기 편들어 주고, 달래주고, 지지해주는 형제나 가족 같은 직원들도 없을 터이다.


  나는 생활인들이 시설 퇴소 후, 조금이라도 자립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이를 찾아 생활인들에게 교육시키고자 애를 쓰고 있다. 루비 페인은 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저서에서 빈곤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교육인간관계라고 말 했듯이, 나는 생활인들에게 자립기술교육과 당당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생활인들 각자의 적성에 맞는 기술교육학원에 보내면서, 학원교육 받을 동안 아이를 맡아 돌봐 줄 아이돌보미를 가급적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 그 바람에 조그만 시설에서 아이 돌봄 비용이 많이 사용되는 것을 이상히 여긴 주무관청에서 특별 점검을 나올 정도의 에피소드도 생겼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달리지 않는 버스는 고장도 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귀찮은 관청점검을 피하기 위해 가만히 앉아서 기본만 하는 시설운영은 애당초 내 스타일은 아니기에 말이다. 이것은 앞으로도 열심히 달려야 하는 내게 있어서는 종종 감내해야만 할 부분인 것 같다.

 

  어쨌거나, 오늘 떠나보내는 아기 곰 가족에게 생활가전용품을 후원받아 전해 줄 수 있어서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리고 비록 떠나는 아기 곰이 눈에 밟힐지라도, 또 새로운 아기 곰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직은 태어난 지 50일 정도밖에 안되어 옹알이 수준에도 못 미치지만, 이 녀석들도 우리 도담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리라 여겨진다. 그렇게 또 인연은 생겨나게 되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리라. <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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